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생애 (문단 편집) ==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 1769년 12월부터 3년간 계속된 연주여행은 이전의 여행과 달리 과감하게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로 방향을 잡았으며, 엄마와 누나 난네를이 빠지고 아빠와 아들만 참여하였다.[* 난네를은 2차 여행이 끝난 후 음악교사가 돼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이도 이미 18살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소녀음악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이 이탈리아 여행은 연주여행이라기보다 작곡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로 소년 작곡가 모차르트의 역량이 빛났던 여행이었으며, 이 여행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 덕분에 모차르트는 훗날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가 될 수 있었다. 여행 첫 해 [[볼로냐]]에서는 당시 유명 오페라 작곡가였던 요세프 미츨리베첵(Josef Mysliveček, 1737-1781)과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 신부(Giovanni Battista Martini, 1706-1784)를 만나서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미츨리베첵은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보헤미아 왕국]]([[체코]]) [[프라하]]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작곡가이다. 현재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인물이지만 당대에는 가장 인기있는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모차르트에게 이탈리아 오페라 작법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준 은인으로, 이탈리아 여행 이후에도 모차르트 부자는 이 미츨리베첵과 종종 연락을 주고 받았다. 미츨리베첵 본인도 외국 출신이었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외국인 입장에서 어떻게 이탈리아 오페라를 배워야 하는지 잘 알려주었다고 한다.][* 마르티니 신부는 당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음악 이론가이자 교육자였다. 모차르트 부자도 마르티니 신부를 만나기 위해 꽤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마르티니 신부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후 모차르트에게 수준 높은 대위법과 음악이론을 가르쳤다. 모차르트는 마르티니가 1784년 사망할 때까지 서신을 주고 받았다.] 마르티니 신부의 주선으로 원칙적으로 20살 이상의 작곡가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카(Accademia Filarmonica)의 회원자격을 받았다. 이듬해(1770) [[로마]]에서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연주된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의 종교음악인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를 2번 듣고 거의 그대로 악보로 옮겨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곡은 당시 [[바티칸]]에서 악보를 유출시킬 경우 파문에 처할 정도로 엄격히 악보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특별한 정치적 이유는 없고 일종의 [[바티칸]] 신비주의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이 음악은 [[바로크]] 초기 작곡가인 알레그리의 작품으로 되어 있으나, 18세기 초에 토마소 바이(Tommaso Bai)라는 작곡가에 의해 한 차례 개작되었다.], 당시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겁없이 신성모독을 저지른 이 ~~인간 녹음기~~ 소년을 파문에 처하기는커녕, 그의 재능을 크게 칭찬하고 황금 박차 기사단(Chivalric Order of the Golden Spur)이라는 근사한 칭호도 수여하였다. ||<:>[[파일:889px-Martini_bologna_mozart_1777.jpg|width=500]]|| ||<:>황금 박차 훈장을 달고 있는 모차르트. 1777년. 상단에는 그가 볼로냐의 베로나 음악회 회원이라는 것이 쓰여져 있다.|| 같은 해 [[밀라노]]에서는 드디어 모차르트 최초의 본격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Mitridate, re di Ponto, K. 87)>가 공국 왕립 극장(Teatro Regio Ducal)에서 초연되었는데, 14살밖에 안된 소년 작곡가의 작품임에도 무려 21회나 상연될 정도로 당시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성공 덕분에 모차르트는 공국 왕립 극장에서 주기적으로 작곡을 의뢰받아 <알바의 아스카니오(Ascanio in Alba 1771, K.111)>, <루치오 실라(Lucio Silla 1772, K.135)> 같은 오페라들을 잇따라 작곡하였다. 이때, 72세의 원로 작곡가인 [[요한 아돌프 하세]]는 그의 오페라 <알바의 아스카니오(Ascanio in Alba 1771, K.111)>를 듣고 '''"이 아이는 나중에 우리 모두를 잊혀지게 할 것이다"'''라는 ~~예언~~말을 남겼다. 당시 하세도 이때 오페라 <루지에로(Il Ruggiero)>를 밀라노에서 초연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작곡한 이 세 오페라는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별도로 모차르트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발전하는 소년 작곡가 모차르트의 잠재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음악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루치오 실라는 실패까지는 아니지만 미트리다테나 알바의 아스카니오처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대본이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지오반니 가메라(Giovanni de Gamerra)가 쓴 루치오 실라의 대본은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등장인물의 개성 같은 극적인 요소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가사마저 유치함의 극을 달리고 있다.[* 그나마 가사는 가메라의 스승 메타스타지오(Pietro Metastasio)가 대폭 다듬어서 많이 나아졌다. 가메라는 나중에 꽤 인정받는 대본작가가 되지만 루치오 실라처럼 초짜 시절에 쓴 대본들은 상당수가 이런 3류급 풍모를 자랑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런 망한 대본이 나오는 것은 당시 오페라계를 장악하고 있던 가수들의 등쌀 때문이기도 했다. 그 시절 가수들은 자신이 부각되고 가창력을 과시하는데만 신경을 썼기 때문에 스토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가 현재 자주 연주되지 않는 이유도 이런 스토리상의 약점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 이런 엉터리 대본 때문에 고생한 경험 때문인지 후에 모차르트는 오페라를 작곡할 때 대본의 완성도에 굉장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설하고,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더 나이들어서 신동의 이미지가 사라지기 전에 어떻게든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다. 다행히 모차르트는 가능성있는 소년 [[오페라]] 작곡가로서 이탈리아 오페라계에 나름 신선한 인상을 주었고, 덕분에 [[밀라노 공국]]의 총독으로 부임해있던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의 4남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이 모차르트를 궁정음악가로 고용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페르디난트 대공의 모친 [[마리아 테레지아]]는 모차르트 가족과 나름 인연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 이 채용을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모차르트의 취업은 성사되지 못했다.[* 페르디난트 대공은 1754년생으로 모차르트보다 겨우 2살 많았기 때문에 비슷한 연배의 소년 작곡가 모차르트에게 큰 흥미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모차르트 부자에 대해 '거지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고용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쓸모없는 사람들'이라면서 고용에 반대했다. 이렇게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결사적으로 반대한 이유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레오폴트가 빈에서 아들의 오페라를 상연시켜달라거나 궁정음악가로 받아들여달라는 등의 각종 청원서를 황궁에 올리면서 유난스럽게 굴었던 것 때문에 모차르트 부자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774년에도 모차르트 부자는 [[호프부르크|빈 황궁]]에서 뇌물을 써가면서 마리아 테레지아를 직접 알현할 기회를 얻었는데, 이 자리에서 레오폴트는 아들을 당시 공석이었던 빈의 황립 극장감독으로 추천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결국 1773년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에서 성공에 대한 기대를 접고 고향 잘츠부르크로 돌아가는데, 돌아오기 전 오늘날에도 절창되고 있는 소프라노 독창을 위한 [[모테트]], <기뻐하라 찬미하라(Exsultate, jubilate, K.165)>를 작곡하면서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 모테트는 사실 [[소프라노]]가 아니라 [[카스트라토]] 가수였던 베난치오 라우찌니(Venanzio Rauzzini)를 위해 작곡된 것이다. 이 라우찌니는 루치오 실라에서 세실리오 역할을 맡아서 상당히 인상적인 가창력을 보여주었고 이 모테트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작곡된 것.] || [youtube(AEIYygY83n0,width=400,height=240)] || || Mozart Exultate Jubilate, K. 165(Lucia Popp)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